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배트맨 v 슈퍼맨 리뷰 : 정의와 희망, 서로의 결핍을 채우다 (스포有)

리뷰

by 좋은리뷰굿 2016. 3. 23. 12:01

본문

반응형

그러나 연출이 말아먹다.

 

곱씹을수록 영화 배트맨 v 슈퍼맨은 두 사람의 서로 다른 면에서 성숙한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의 모습을 비교하고 각자 다른 결핍을 가진 둘이 부딪히며 얻게 되는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의 성장에 도움을 주도록 유도하려고 애쓴 영화인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다시말하자면,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라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두 영웅의 만남과 그로인한 변화, 성장, 즉 서로를 통해 결핍을 해소하고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배트맨과 슈퍼맨의 이야기라는 것이죠.

 

 

 

 

 

● 배트맨의 결핍 : 자아비판, 해소되지 못한 트라우마

 

영화는 일단 배트맨의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어릴적 겪은 강렬한 트라우마.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눈 앞에서 비명횡사한 부모. 그리고 그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무기력한 자신. 너무나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이 장면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건 이 영화가 이 두 부모의 죽음의 순간을 그린 방식이 기존과 약간 다르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카메라는 쓰러진 두 부모 사이에서 절망하는 어린 브루스 웨인에게 포커스를 맞추다 풀샷으로 확장되며 페이드 아웃되지 않고 오히려 죽음의 순간 부인의 이름을 부르는 토마스 웨인의 입술과 마사 웨인의 확장되는 동공에 집중합니다. 저는 이 장면이 바로 이 영화가 앞으로 서사를 전개해감에 있어서 배트맨이 슈퍼맨에게 왜그렇게 분노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되는지에 대해 결정적으로 암시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왜 슈퍼맨의 심장을 창으로 찌르기 직전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마사'라는 단어에 폭주하던 배트맨이 급브레이크를 밟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이기도 하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영화가 이 장면을 통해 어린 브루스가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의 대상으로서 각인하고있는 어머니를 지키려는 시도조차 못함으로써 느낀 남자로서의 패배감, 부채의식을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인과 자식을 지키기 위해 맨 손으로 총구 앞에 맞서던 아버지, 토마스 웨인. 어린 브루스가 무의식 속에서 남자로서 동일시하는 대상이었을 그는 악에 맞서다 장렬하게 쓰러지고, 마지막까지 그가 지키려했던 대상의 이름을 부르며 죽어갔습니다. 그것은 어린 브루스 웨인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자 쓰라린 패배의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배트맨이 되는데 큰 동기부여가 되었음에 틀림없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많은 돈과 노력을 쏟아부어도, 부모의 죽음과 함께 각인된 무력감, 패배감, 부채의식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매일밤 악몽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의 목을 졸랐지요. 지키기는 커녕 꼼짝도 못한 채 살해당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만 했던 그의 어머니가 관 속에서도 피를 흘리고, 그에게는 공포 그 자체인 박쥐 괴물의 모습으로 되살아나 그를 공격하는 장면은 그의 자책감과 부채의식이 얼마나 강렬하게 그의 영혼을 옭아매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20년이 넘게 자경단 활동을 했지만 악은 잡초마냥 베어도 베어도 다시 자라나고 주변의 사람들은 변해버렸음을 그와 알프레드의 대화를 통해 알수 있었지요. 배트맨에게 남은 거라고는 주인 없는 훼손된 로빈의 의상 하나 뿐, 배트맨은 나이들었고, 지쳐버린 상태였다는 것을요. 그러던 어느날 그런 그의 앞에, 슈퍼맨이라는 외계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자신의 회사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차원이 다른 힘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참담함. 무너진 건물 속에 갇힌 어린 여자아이의 어머니.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시야에 잡힌 슈퍼맨. 그 순간 브루스 웨인에게 슈퍼맨은 어떻게 비춰졌을까요? 구원? 희망? 택도 없겠죠. 아무 잘못 없이 그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었던 어린 아이의 어머니의 생명을 빼앗아간 원흉일 뿐더러, 자신의 무력함을 새삼 깨닫게 하여 그의 트라우마를 폭발하게 만든 슈퍼맨이 배트맨의 증오의 대상이 되는건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요. 늙고, 지쳐서 이제는 포기하기 일보직전이었던 배트맨에게 슈퍼맨이라는 존재는 그가 마지막으로 해결해야할 숙명적 과제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죠. 설령 20년이 넘게 고수해온 불살의 법칙을 제 손으로 깨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거기에 기름이라도 붓는 것 마냥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이 슈퍼맨이라는 자는 그 역시도 미숙한 히어로 활동으로 허구헌날 매스컴의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콧대 높이며 자비를 베풀어 줄테니 이제 배트맨으로서는 죽어지내라고 선전포고를 하고 사라진 직후, 의회 테러를 그자리에서 눈 뜨고 보면서도 막지 못한 채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키는 미성숙한 모습을 가감없이 노출해버립니다. 20년이 넘게 활동한 영웅 배트맨으로서도, 자신의 세상을 지키는 데 실패하고 분노와 고통으로 가득찬 브루스 웨인이라는 남자로서도, 그는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판단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더이상은 미룰 수가 없다고요.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결국 배트맨의 슈퍼맨에 대한 적개심은 그의 트라우마에 기반한다는 것이 저의 결론이었습니다. 애착의 대상을 잃어 해소되지 못한 욕구와 거기서 비롯된 심적 괴로움으로 인해 어딘가 뒤틀려버린 그의 정신은 그 애착의 대상을 앗아간 이와 유사한 범죄자들에게 분노를 해소함으로써 탈출구를 찾아왔는데 아무리 뽑고 쳐내도 다시 올라오는 잡초와 씨름하는 데 지친 그의 눈앞에 마침내 슈퍼맨이라는 끝판왕이 등장한 것이죠. 이것이 그의 적개심이 이성을 넘어 1%의 가능성이 남은 99%를 눌러버리는 계산이 가능하게 만든 것이고요.

 

 

● 슈퍼맨의 결핍 : 자아도취, 미성숙한 영웅심

 

한편 슈퍼맨 역시 영화 내내 영웅으로서는 너무나 불완전한, 스스로의 힘에 도취된 오만한 영웅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성을 구하는 것이 가장 우선시되는 그에게, 정치적 이해관계나 그로 인한 희생은 고려의 가치도 없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사과조차 하지 않았죠. 심지어 자신의 길과 다른 길을 가는 배트맨을 용납하지 못하고 경계하며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일방적으로 배트맨의 일을 훼방놓고 활동을 그만두라 위협하면서 자비를 베푸는 것이라 으스댑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고작 테러하나 막지 못했지요.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매스컴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요.

코앞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아무도 구하지 못한 영웅. 그래놓고 혼자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온 영웅. 누가 그런 이에게 두 팔 벌려 환호할 수 있을까요. 슈퍼맨에게는 무언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겠지요. 그것이 무엇이가, 신념인가? 통제력인가?

 

저는 클락 켄트가 산에서 과거 아버지의 환영을 보는 장면에서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힘있는 자가 무언가를 지키기로 선택했을 때, 따라오는 대가가 무엇인지 직시하는 것. 그의 선택은 그에게 선택받지 못한 누군가는 재산과 생명을 잃게 된다는 것을 알고도 외면하도록 요구한다는 것. 결국 영웅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버릴지 선택하는 일이며 그것은 그로하여금 매순간 고뇌하고 번뇌토록 할 것이고, 그 선택의 결과 구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짊어지도록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것임을. 이는 곧 자기희생 정신인 것이지요.

슈퍼맨, 아니 농부의 아들일 뿐인 클락 켄트는 이를 깨닫는 순간 영웅의 길을 포기하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영웅으로서 미숙하지 그지없던 그는 자신이 이미 그 돌이킬 수 없는 고행의 길을 걷기 시작한 후라는 걸 깨닫지 못했고 그 결과 루터의 새로운 덫에 걸려들고 말죠. 신과 같은 힘을 지녔으면서 한낱 인간에게 너무나 쉽게 흔들리고 마는 애송이 영웅. 이 모습을 통해 영화는 슈퍼맨은 영웅으로서 큰 것이 결핍되어 있으며 그가 이대로 추락할 것인지, 아니면 영웅으로서 한단계 성장할 것인지의 전환점에 다다랐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덫에 걸린 결과 할 수 없이 떠밀려 배트맨 앞에 선 슈퍼맨은 그가 가진 전능에 가까운 힘을 생각하면 너무나 초조하고 조급해 보입니다. 아니나다를까, 그저 휩쓸려다니던 슈퍼맨은 노쇠했으나 노련한 인간 영웅의 손에 죽음의 직전까지 몰리고 말지요. 그렇게 벼랑끝에 몰린 그의 입에서 마침내 터져나온 말은 제 어머니 마사를 지켜달라는 애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사'라는 단어는 배트맨의 아머가 반쯤 부숴져 겉으로 드러난 브루스 웨인의 자아를 격렬하게 흔들며 관통합니다.

 

 

 

 

● 괴악한 연출

 

그런데 이 영화의 결정적인 패착이 바로 여기서 발생합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서 여기까지 끌고온 두 사람의 서사를 너무나 밋밋하고 단순한 장면 연출로 엉성하게 넘어가 버린 것이죠. 몇 마디 되지 않는 그 대화로, 방금 전까지 그렇게 미친듯이 폭주하던 배트맨이 급브레이크를 밟고 멈추더니, 크립토나이트 창을 던지고서 슈퍼맨의 친구가 되어버리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며 영화의 무게감이 갑자기 10분의 1로 줄어들어버립니다. 관객은 당황할 수 밖에 없죠.

저는 확신합니다. 그 1분도 안되는 연출이 말그대로 영화 전체를 말아먹어버렸다고요.

그러니 그 이후에 배트맨과 슈퍼맨이 아무리 멋지게 액션을 구사하며 악당들과 싸워도 멋있어 보이지가 않는것이죠. 그들을 보며 관객들은 어이없어하며 묻습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그냥 마마보이였던 거냐? 하고요.

저는 이 영화에서 원더우먼이 상대적으로 호평을 받는 건 저 복잡한 내면을 연출하는 데 실패하고 길을 잃은 영화의 흐름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캐릭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명해야 하는 서사 없이 그저 멋지게 떡밥을 뿌리는 것이 그녀가 맡은 임무의 전부이기에 설득력을 잃은 괴랄한 연출에 2시간 동안 억지로 끌려오다 지친 관객의 시선을 시원한 액션과 매력적인 미소로 단숨에 사로잡아버린 것이죠.

하아...ㅜㅜ;

 

 

● 결핍을 채우다

 

아무튼, 슈퍼맨은 자신이 희생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큰 것, 바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는 것을 선택하며 세상에 영웅으로서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희생의 의미를 죽음을 통해 배움으로써 진정한 영웅으로 재탄생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죠. 또한 배트맨은 마침내 간접적으로나마 '마사'를 구해냄으로써 영영 잃어버린 줄 알았던 탈출구를 찾는데 성공합니다. 드디어 악몽에서 해방되게 된 것이죠. 그리고 그 사실은 그에게 변화의 당위성을 부여합니다. 슈퍼맨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며 남긴 세로운 세계, 마사와 로이스 레인이 살아있는 세계를 이제는 배트맨이 책임지고 지켜야 한다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그는 슈퍼맨 뿐만이 아닌 다른 메타 휴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슈퍼맨의 사례를 통해 그들과 소통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의 독자노선을 버릴때가 왔음을 직시하게 된 것이지요. 그렇게 영화는 서로를 통해 결핍을 채우고 성장 및 변화한 두 영웅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힌트를 던져주고서 슈퍼맨의 부활을 대놓고 예고하며 끝이납니다.

1분, 그 괴랄한 1분이 앗아간 두 영웅의 서사가 너무나 아쉽습니다.

 

엉엉어엉어어어어어어어어엉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