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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2년차... 그리고 아이의 백일... 그간의 삶에 대해...

열려라 웹소설

by 좋은리뷰굿 2020. 8. 19.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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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학교 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시원하게 15억 정도를 말아먹고... 중 고등학교를 말 그대로 찌글찌글하게 살았다.

그래도 좀 덤덤한 편이라... 급식비와 학비를 못내도 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냥 뭐 좀 생활이 빡빡하구나 정도...?

공부는..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학교가 시골에 있기도 했고, 학원은 다니지도 못했고 수능 백일 전까지 아버지를 따라서

소 먹일 짚단을 모으러 다녔다... 수능이야 뭐... 그냥저냥 보다 보니 당연히 지방대를 다닐 수밖에 없었고, 꼴에 겉 멋이 들어서인지

4년제에 어찌어찌 들어갔다.

 



등록금은 마련했지만.. 월 15만원짜리 자취방에 월 용돈이 15만 원이었다... 신입생이다 보니 이리저리 얻어먹고 다녔기에

그나마 15만원의 용돈으로 겨우 연명이 되었다. 하지만, 그 용돈도 2~3개월에 한 번씩은 받지 못하거나 방세를 못 내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다나 어떻게 운이 좋게도 성적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나름 뿌듯했던거 같았다... 내 밑으로는 동생이 둘 있었고...

특히 밑에 연년생 동생도 대학을 가게 되다 보니 장학금을 받았던게 나름 가계(?)에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1학년을 보냈다..

당시 인터넷 소설이 상당히 인기를 끌었던 시기였다... 무협지나 로맨스, 판타지가 절정을 달리던 시기였다... 나 역시 무작정 글을

싸질러보자...라고 했고... 당시 조아라??라고 했던 소설 사이트 투고를 하다가... 내가 21살이 되던 때 조선일보 현대문학(?) 공모전에서

나름 입상을 해서 출판사와 계약금으로 250만원에 인지세 8%?? 조건으로 12권 보장의 계약서를 썼다...

부모님이 좋아하셨다... 당연히 그 계약금은 첫째 동생의 등록금으로 들어갔고, 내가 5권의 원고를 넘겼을 때 출판사는 공중분해;;;

난 군대로 끌려갔다...

 



그렇게 군대에서 2년 3개월을 보내고 복귀... 복학을 하고 나름 정신을 차려서인지... 열심히 살았던거 같다...

가세는 펴지지 않았기에 장학금에 목을 멜 수 밖에 없었고... 남은 학기.. 근 3년을 전액 장학금 받으면서 다녔다...

물론, 부모님은 내게 용돈을 주실 만한 형편이 안되었기에 바래지도 않았고, 지방대이다보니 솔직히 공부를 하는 학생만 공부를 했다...

때문에 시험기간 3주동안 밤을 새우면서 책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암기하다 보니 나름... 어찌어찌 받았던 거 같았다...

졸업 당시 성적은 4.5 만점에 평점 4.3이었다... 놀기도 잘 놀았다... 선배들과 관계도 좋았고...

후배들도 잘 놀고 학점도 잘 나오는 선배이니 좋게 봐주었다... 후배와 정말;;; 건전하게 연애도 한두 번 해봤었다...

그 때문인지.. 나름대로 삶에 자신이 붙었다... 그냥... 자신감이었던가 같았다... 반찬 살 돈이 없어서 일주일 내내 맨밥에

순두부 3봉지 천 원에 사서 비벼먹어도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일주일에 4일 정도 학원에서 수업 알바를 뛰게 되었고

2학년 복귀하면서 졸업 후, 그리고 28살때 까지 작은 학원에서 3년... 나름 큰 단과 학원에서 4년 정도 일을 했다...

 

그러다가 학원 선생은 흔히 말하는 평생직장은 안될거 같아... 28살 초반에 때려치우고... 공무원 준비를 했다... 남들과 똑같은 루트였다...

공부할 때 5살 여자를 알게 되었고... 같이 공부를 하다가... 내가 29살 후반에 어찌어찌 취업을 하게 되었다...

공무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반 공무원(관공서와 함께 일하는), 60살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여자는 낙방...나는 그렇게 직장이 있는 곳으로 떠났고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서른 살부터 직장을 다녔고... 힘들기도 힘들었고 재미있기도 재미있게 보냈다... 당시 첫 월급이 세후 240이었기에

차값 70만원... 용돈 50만 원을 제외하고 모두 부모님께 드렸다... 나름 장남으로써 뿌듯하기도 했다...

조금씩 집안을 회복해갔고... 나도 경제적으로 조금씩 펴졌다... 부모님은 고지식한 분이셔서 그런지... 평생직장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입사한 것만으로도 안심을 하셨다...

 

그렇게 33살 때... 같이 공부했던 아가씨에게 뜬금없이 연락이 왔고... 틈틈이 연락을 하다가... 여자 후배 쪽에서 고백... 연애를 하게 되었고

내가 34살에 결혼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반대하셨다... 공무원 여자랑 결혼하던지 교사와 결혼하라고...

물론... 난 그 말에 반박했다... 개박살난 우리집에 그런 직업을 가진 여자가 시집오냐고... 근본도 없는 집안에 그런 여자들이 미쳤다고 오냐고

여자 후배를 얕잡는 것이 아니었지만 나름 사랑하기도 했고, 수수하고 알뜰살뜰했기에 이 정도의 여자면 괜찮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결혼을 강행했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구워먹듯이 결혼했다... 혼수는 와이프가 모아놓은 돈 1300만 원으로 혼수... 대신 나와 함께 살면서 직장을 구할 때까지

외벌이로 가는 조건이고 난 빌라 1억 5천을 전액 대출 받아 양가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결혼했다...

아버지 앞으로 축의금이 근 2천만원 가까이 들어왔지만 난 받지 않았고, 와이프도 처가에 손을 벌리지 않았다.

와이프는 혼수. 난 집. 이렇게 시작했다.

 

하지만... 와이프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연애 때 소극적이고 소심하다고 생각했지만... 와이프는 피해망상에 환청이 들리는 상태였다.

신혼여행 가는 날... 인천공항에서 외국인 부부가 자신을 알아보고 손가락질 했다는 말에... 난 뭔 소리인가 했다...

그 증세는 신혼여행 첫날 부터 시작되었다... 결국 와이프는 호텔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고... 나 혼자 6일 동안을 밖에서 홀로

신혼여행을 보냈다...

알고보니... 와이프가 유학 때 인종차별로 인해 4학년 때 포기하고 입국했고, 와이프의 뒷바라지를 하던 처가는 와이프가 실패하고 오자

심히 질책을 했다고 했다... 이때 부터 와이프는 대인기피+환청+피해망상이 시작되었고, 처가 식구들은 와이프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병원에 넣어버리기 까지 했다... 신혼여행지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의 심정이란...

여하튼... 그렇게 우리 신혼은 시작되었다... 직업 특성상 회식이 많은 나였고... 와이프는 타지에서 혼자서 나만을 기다리다 보니

자연스레 생활패턴의 문제로 다투었다... 와이프는 이틀 걸러 내게 주변 마을 사람들이 유튜브에서 자신을 검색해서 흠집을 찾아내

손가락질한다고... 당연히 난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일 년 반... 근 15개월 동안 그 소리를 했고... 그로 인해 이틀 걸러 싸웠다...

 

물론 와이프를 방치한건 아니었다... 주말에 3시간이나 걸려 심리상담을 가 근 백만 원을 꼬라박으며 치료를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본인이 거부... 약을 먹여보기도 했지만 거부... 어르고 달래보았지만.. 결국 와이프는 상태가 심해졌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안좋아졌다... 아버지는 와이프에게 한 번도 며느리라고 하지 않았다...

이혼 이야기가 밥먹듯이 나왔다... 와이프를 친정으로 내쫓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와이프는 항상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오빠가 날 내 치면 자신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고모들도 정신병은 고칠 수 없다고 했고... 동생들도 새언니로 인정하지 않았다...

난 정말 결혼을 후회했다... 처가에도 왜 이걸 미리 이야기 하지 않았냐고 소리쳤고.. 처가는 말하지 않았냐고 적반하장이었다...

 

그러다가 잠시 와이프가 약을 꾸준하게 먹기 시작했고... 와이프의 상태가 호전되었다... 2달간의 짧은 행복이었다.

와이프는 차분하고 수다를 많이 떠는 내가 알던 후배의 모습으로 돌아와있었다...

이때 집안의 분위기가 꽃이 피듯 바뀌었다.. 그리고 임신을 하게 되었다... 딸 아이였다...

부모님은 절대로 반대했지만... 나는 무조건 아이를 잘 키우겠다고 했고...

와이프는 약을 끊었다....

다시 원상태가 되었다... 정말 많이 싸웠다.... 부모님까지 오셔서 이혼하라고... 하실 정도였다...

 

결국 아이가 태어나고... 와이프는 아이가 태어난지 2주가 되던 날 아이를 버려두고 친정으로 도망치듯 가버렸다...

난 결심했다... 이혼을... 무엇이 되던간에 아이를 놔두고 가는 여자를 난 용납할 수 없었다...

연락을 다 끊어 버리고 아이를 어머님께 부탁드렸다... 내가 죽을 때까지 와이프를 보는 일은 없다고 다짐했다.

부모님도 와이프가 들어오는 것에 반대했다....

아이는 너무나도 예뻤다... 어머니가 봐주셔도 난 옆에 붙어잤고... 울고 보채어도... 하루 2시간밖에 못 자고 출근해도 너무나 행복했다.

와이프는 내게 있어서 오점. 그 자체였고, 없어도 불편하지 않은... 그런 존재가 되었다...

 

그러다가 와이프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이가 보고 싶다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울고불고 하는 그녀의 전화와 연락을 난 당연히 모두

씹어 버렸다.. 그렇게 근 3주가 지났다... 결국 와이프는 나와 연락이 안되자 최후의 수단으로 아버지께 연락을 했다.

아버지는 정말 성격이 불같고 급해서 와이프가 아버지 앞에서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벌벌 떠는 게 보일 정도로 아버지를 두려워했다.

그런 와이프가 아버지께 전화를 해 자신을 데려가달라고 했다... 친정에서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잘못했다고 울면서 전화를 했다....

아버지가 나를 앉혀 놓으시고는 말하셨다. 곰곰히 생각하면 우리 가족은 와이프를 가족이라고 하면서 와이프를 치료하거나 감싸 안을

생각을 하지 않고 참으라고 했다고... 와이프가 집안에 몰래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고... 적금을 깨 300만 원이나 퍼부으면서

몰카 탐지를 하는 마당에도 우리는 참으라고 윽박지르기만 했다고... 이해하지 않고 받아주지 않았다고..

그러니 이번에는 아버지가 책임 질테니 와이프를 바로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

논을 판던 집을 팔던 와이프는 아버지 본인이 치료시키겠다고... 마지막으로 한번 더 시도를 해보자고...

 

그렇게 와이프는 집으로 돌아왔다...

 

첫 주동안의 와이프는 주눅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본인도 본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을 한 듯했다... 아버지는 와이프에게

약을 타와 직접 약을 챙겨주셨고... 와이프도 약을 먹으며 적극적으로 치료하려 했다...

와이프의 상태는 호전돼 시 시작했다... 비록 밤에는 어머니가 오셔서 아이를 봐주시기는 했지만, 와이프는 열심히 노력했다...

일주일에 5일 이상 본가를 찾아가 조모와 말동무를 해주고.. 어머니 뒷바라지도 해주었다...

아버지도 생각이상으로 와이프가 잘해주니... 매우 만족하셨고... 사이도 좋아졌다...

더욱이 손녀가 있는것을 굉장히 즐거워하셨다... 그렇게... 와이프가 올라온 지 세 달째... 와이프의 피해망상이나 환청은 단 한 번도

나 타지 않았고... 어제는 아이 백일상을 차리며 함께 가족사진을 찍었다...

 

많이 힘들기도 했고... 결혼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다... 그래도 이제는 조금씩 그 힘든 것들이 보상받는 거 같기도 하다...

일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참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드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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